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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난 등산가 김명준님의 분단아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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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2-20 09:01 조회4,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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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엇그제 대학선배인 김명준 형이 주소를 달라며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오늘 한권의 책을 넣은 우편물이 배달되어 열어보았다. 제목은 라이프 노 리미츠(A Life No Limits)인데 그 내용은 주로 필자인 김명준 형이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완봉과 8대륙 마라톤 그랜슬램 달성한 어느 올드보이(나이 든 소년)의 인생탐험가…”의 이야기를 담은 288쪽의 책이다.

 

그는 고령자로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오르내린 완등자로 세계기네스북에 등재되어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동시에 나이가 많은 코리안으로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성공한 인물로 이름이 났었고, ,북극을 포함한 세계8대륙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여 마라톤 그랜슬렘도 달성한 인물로 해내외 동포들에게 널리 알펴진 인물이다.

 

이번에 출판한 그의 책 속에는 주로 고산준령의 산악경험과 함께 마라톤 이야기들이 많이 실렸다. 그리고 건강을 강조한 부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등산과 마라톤 이야기에 대해서는 대충 훑어보았다.

 

그런데 이 책 거의 마지막 뒷 부분에 대학시절 아이스 하키 선수에서 운동권 서클에 참여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미국에서 맨손으로 옷 도매상(자바시장)을 한 이야기, 그리고 북의 가족과 55년만에 만난 극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 북에서 온 편지와 관련한 이야기들에 눈이 쏠렸다. 그 이야기를 읽고 이런 부분들은 다른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 책을 읽은 직후 북녘관련 이야기들을 타이핑하여 아래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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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라케시 마라톤 결승점에 들어서는 저자 김명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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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 아메리카 정상 메킨리에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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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극 마라톤 마지막 지점으로 들어오는 저자 김명준님과 그의 사위 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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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근에 발행한 김명준님의 인생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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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명준님의 북녘 형가족과 작은 형의 형수님 조카들, 오른쪽은 저자의 미국의 가족들(부인과 1남3녀)

 북 가족과 55년만의 만남


산을 찿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이제 이 지구상에 어지간한 나라는 다 돌아본 것 같다. 남극과 북극까지도 가려고만 들면 못 갈 것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직 한곳, 북한만은 예외다. 내가 태어난 땅을 한번도 밟지 못하고 살다니, 어쩐지 세상이 부조리한하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라면 엄두도 낼 수 없겠지만 미국에서는 기회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재미한인산악회를 통해 북한의 명산에 오를 방법을 모색하다가, 인도적 지원을 위해 북한을 자주 오가는 동포목사를 만났다. 그가 북한 당국과 협의해 우리 산악회의 입국허가를 받아 준 덕분에 드디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던 땅, 북한에 첫 발을 디뎠다. 북한의 명산 묘향산과 구월산, 그리고 백두산을 오를 계획이었다. 모두 8명으로 구성된 원정대였는데, 같은 산악회 회원인 막내딸 연수도 기록담당으로 참가했다.

2002 910, 우리는 중국을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이 마중나온 북측 안내원이 나를 보자마자 내 가족을 찾아 놓았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북쪽의 아버지와 형님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잘 살고 있는 가족에게 피해를 줄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 때문에 북한행을 추진하면서도 가족 얘기는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가족을 찾아 놓았다니, 그들이 이땅에 정말 살고 있단 말인가.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뿐, 한번도 그 존재감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가족이었다.

안내원의 설명으로는 내가 북한 비자를 신청할 때 적어 낸 본적 덕분이라고 했다. 비자를 신청하며 나는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칠성리 75번지라는 본적을써 넣었다. 그 주소를 확인한 북 당국이 내게 가족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소문하여 찾아 냈다는 얘기였다. 미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이 자리에 어머니가 함께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겐 낮선 가족이지만 어머니에겐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었을 가슴 아린 피붙이였다.

그날 저녁 평양 보통강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장에서 누군가가 나를 찾았다.

김 선생, 작은 형께서는 운명하셨습니다만 큰형은 살아 있습니다. 연락을 해 놓았으니 곧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아버지는 돌아가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3일째 되는 날, 묘향산 산행을 끝내고 저녁을 먹고 있던 보통강호텔 식당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 왔다. 핏줄이 당긴다는 느낌이 그런 것인지, 나는 그들에게 눈을 뗄수 없었다.

네가 인승이냐?”

왜소한 노인으로 변해버린 인배형의 첫마디였다. 이름을 명준으로 바꾼줄 모르고 있으니 형에게 나는 여전히 인승이었다.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볼 때마다,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나도 저들처럼 서럽게 울까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막상 닥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큰 형도 눈앞의 내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손만 어루만졌다. 형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피붙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우린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인배형은 함께 온 가족을 소개했다. 맏딸과 사위, 아직 미혼의 두딸, 그리고 유명을 달리한 인휘형의 처와 삼남매였다. 가장이 없어서인지 인휘형의 자식들은 체격이 몹시 왜소하고 가난에 찌든 얼굴이었다. 그 안스러운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마음을 가라 앉힌 뒤 아버지 소식을 물었다. 아버지는 벌써 오래전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1955년이라고 하니 휴전이 되고 2년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형들은 고아로 자랐지만 그래도 큰 형은 북의 명문 김책공과대학을, 작은형은 평양기계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큰형은 지질학 준박사학위를 받고 용천시 광산회사에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니 생활은 안정돼 보였다.

형과 나는 보통강호텔에 3일간 함께 묵으며 55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내가 형과 처음 상봉할 때 곁에서 눈물만 흘리던 연수(저자가 동행한 딸)도 사촌들과 금방 친해졌다. 일행이 있어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형님, 이번엔 이렇게 가지만 곧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하자 형도 산 때문에 온 걸 알고 있다며 이해해 주었다.

이후 우리는 구월산과 백두산을 올랐다. 같은 땅에서 솟아난 형제 산이라는 듯 산세가 남한의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많이 닮아 있었다. 백두산은 중국쪽에서 오를 때와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해외의 명산을 다 오르내리며 온갖 배경을 눈에 담아 왔지만 백두산의 천지에 서린 서기는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감동이었다.이 아름다운 산을, 이 비경을 남쪽 사람들이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남쪽 젊은이들이 북쪽 땅을 걸어 백두산에 오를 날이 언제쯤 올까.

12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던 날, 그 땅은 올 때와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실체없는 그리움의 땅이던 곳이 형과 형수들, 조카들의 얼굴까지 또렷이 떠오르는 진정한 고향 땅으로 각인되었다. 머지않아 다시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다음에는 북에서 온 편지, ! 어머니를 소개함)   

 

*필자 김명준님은 1943년 평남 안주군 출생. 전쟁시기 어머니와 누나 둘과 함께 남녘으로 피난와서 살면서 서울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KBS방송과 대림산업에서 근무하다고 미국으로 이민왔다. 부인과의 슬하에는 13(판사, 의사, 교수,막내는 법대 재학중)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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