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녹두'회원들은 노길남 특파원과 저녁식사를 나누며 방북동영상을 감상하는 모습
민족통신 편집인 노길남 박사는 최근 미국동부지역을 두루 방문하면서 워싱턴 디씨, 필라델피아, 뉴욕 등지를 두루 취재했다. 이번에는 역사적인 필라델피아를 방문하여 이곳 동포사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든 동포들을 만났다. 노 박사는 "이민역사 111주년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이곳 도시에는 민족주의자들의 활동과 관련한 흔적들도 있었고, 조국분단 전후사에 얽힌 이러저러한 역사의 뒤안길들도 엿보였다. 그러나 이땅도 미국합중국의 역사와 토착민들의 죽음, 그리고 영국과 항쟁한 투쟁의 역사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이곳을 방문한 이모저모를 보도했다. 그의 방문기를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기획-2]재미동포 이민역사 111주년을 돌아본다
필라델피아 '녹두'회원들에게 방북설명회
[필라델피아=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역사적인 필라델피아를 방문하여 이곳 동포사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든 동포들을 만났다. 이민역사 111주년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이곳 도시에는 민족주의자들의 활동과 관련한 흔적들도 있었고, 조국분단 전후사에 얽힌 이러저러한 역사의 뒤안길들도 엿보였다. 그러나 이땅도 미국합중국의 역사와 토착민들의 죽음, 그리고 영국과 항쟁한 투쟁의 역사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이 넓은 땅 미국은 본래 토착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수천만여명의 토착민들이 유럽에서 온 백인침략자들에 의해 학살되었다. 바로 그 학살자들의 백인 후예들이 오늘날 미국지배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역사속에 소수민족 중 소수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종 중 하나가 코리안들이다. 백인들은 17세기부터 이민이 시작되었지만 코리안들의 이민은 1903년, 즉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지금까지 지난 111년 동안 소수에 불과하던 코리안들은 미국 전역에 170만명을 넘어섰다. 혹자는 재미동포들의 숫자가 2백만명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부분 코리안들은 로스엔젤레스를 비롯하여 뉴욕과 뉴저지, 시카고, 샌후란시스코 등 대도시에 삶의 근거지들을 두고 있다. 필라델피아 시에는 총 인구가 155만여명 되는데 우리 동포들이 5만내지 6만명 가량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라델 피아는 펜실바니아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미국 동부지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고 미국 전체에서도 5번째로 큰 도시인데 도시 규모에 비해 재미동포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단체들의 숫자도 다른지역에 비해 많지 않아 동포사회의 움직임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필라델피아는 1682년 영국출신인 윌리엄 펜(퀘이커 신자)이 창설한 미국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자유의 종’을 포함하여 독립에 관련된 유적들이 많다. 1787년에 미국헌법의 기초작업이 이뤄졌고, 1790년부터 10년동안은 미연방의 수도로서 역할했던 도시이다. 지금은 미국 제2의 항구도시이다.
필라델피아는 처음에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건너온 퀘이커 교도들의 정착으로 이뤄졌다. 19세기에는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는 흑인들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흑인들이 많은 이유는 1600년대 퀘이커 교도들의 인종평등을 믿으면서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여러 다인종들이 이곳에 이민와 삶의 거처를 정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50개주를 건설하여 합중국을 만들고 연방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 도시에 있는 명물 중 하나는 미국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이다. 이 기념관은 기념관은 (Independence Hall) 원래는 펜실바니아주의 법원이었으나 1775 년 부터 13 개 미국 주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계속하여 1776 년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선포한 장소이다. 그리고 몇년후 미국의 최초 헌법이 작성되어 서명및 선포 된곳이기도 하다. 그 자유의 종 (Liberty Bell) 이 자리잡고 있다. 이 종은 원래 독립 기념관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면서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종을 울려 주던것이었으나 1800년대 초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여 지상으로 내려놓아 보관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독립기념관 근처에 미국 헌법기념관 (National Constitution Center) 을 개관하여 미국 헌법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보관하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일제시대 코리아의 독립운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도시이다. 1919년 조국 땅에서 3.1 운동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때 필라델피아에서 살면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서 재필 선생이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재미 동포들과 유학와 있던 학생들을 불러 모아 필라델피아 시청 근처 극장을 임대하여 큰 항일 대회를 개최하였고, 조국의 항일운동에 대해 미국 사회에 특히 미국 정치가들에게 소개하면서, 그 마지막날인 1919년 4월 16일에는 필라델피아 시청 근처 대회장소에서 부터 필라델피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미국 독립기념관까지 조선의 독립을 외치며 행진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 미국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큰 태극기를 맨앞에서 들고 그뒤에 우리 동포들이 행진을 하고 있으면 그 앞과 옆을 필라델피아 경찰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이 현재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서재필 기념관에 전시 되어 있다.
서재필 선생은 1800년대 말 조선 근대화를 외치며 왕이 아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산업을 근대화 하면서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면서 갑오경장을 주동한 인물의 하나로, 갑오경장 실패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1890년에 미국 최초로 미국 의과대학 졸업생이면서 최초 재미동포 의사가 되었으며, 또한 1892년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받고 활동한 인물이다. 그후 다시 조선에 귀국하여 서대문 영천에 독립문을 세우고 또한 최초의 우리말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행하면서 조선의 근대화와, 현대식 교육을 주장하면서 조선이 일본, 청나라, 러시아등 이웃 국가들로 부터 독립하여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독립신문은 우리말 최초의 신문이며 영문 신문이다. 그는 ‘독립신문’을 통하여 주위 강대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맹렬히 주장 했으며 무지한 국민을 깨우치려고 노력했다. 그는 조국 땅에서 민족주의자로서 강대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외치다가, 청나라와 일본의 세력에 다시 밀려나 미국으로 건너와서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Korea Review 라는 영문잡지를 발행 하면서 일본의 잔학상을 미국내에 널리 알리는데 주력 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 하였다.
지금 필라델피아에는 서재필기념사업회가 있어 이 조직에 참여하는 동포들은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필라델피아 외곽에 미디아 (Media) 라는 도시에는 해방후 한국에서 잠시 활동 하다가 미국에 다시 돌아와 1951년 운명할때까지 살던 집이 서재필 기념관으로 박물관이 되어 있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 하기도 했었다.
서재필 박사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송재(松齋)이고, 영어명은 필립 제이슨(Phillip Jaisohn)이다. 서재필 하면 독립운동가 혹은 독립신문 발행인으로만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따라서 일반인들 사이에는 코리안으로서 최초의 서양의사였다는 사실에 대해선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서재필 박사는 1889년 조지워싱턴대학에 수학하면서 당당히 의사 자격을 따냈고, 졸업후 잠시나마 병리학교실 조교수로서 세균학을 연구했다.
그는 일제로부터 우리나라가 해방되어야 한다는 민족정신은 가득했으나 조국분단으로 한쪽은 민족해방세력이, 또 한쪽은 미국의존 세력으로 갈라진 상황에서는 후자에 가담하여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며 미군정의 한반도 지배정책과 동북아 팽창정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다시말하면 그는 민족주의자의 한사람으로 활약은 했지만 미국지배세력의 대외정책의 본질인 침략정책을 파악하지 못하고 처신하였던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는 또 어릴때 해외로 나가 우리말을 못하고 남들이 통역을 하여 주위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 그는 또한 지식인의 한사람이었지만 당시의 정세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점으로 여운형 선생처럼 좌우 양측을 아우르고 결합시켜 우리민족의 자주권을 행사하며 통일조국을 이루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미군의 지배정책에 가세하였던 것을 무척 아쉬워 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기자는 이 도시에 거주하면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단체 회원들을 만났다. ‘녹두’라는 이름으로 활약해 온 회원들 일부와 만나 동포식당에서 지난 15일 저녁식사를 나누며 서너시간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관심은 ‘박근혜 퇴진’, ‘국정원 해체’에 집중되어 있는 한편 장성택 처형과 이북사회의 동향에 대해서도 궁금한 반응들이었다.
참석자들 가운데 북을 방문한 동포는 한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북부조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표정들이어서 식사를 나누며 ‘민족통신’이 주관한 북부조국 바로알기 방북단의 이북여행기를 촬영한 동영상을 틀었다.
우리민족 5천년 역사가운데 주요 사적지들과 당시의 문화를 형상화 하여 놓은 대형 민속공원을 비롯하여 화초연구소, 남새(야채) 연구소, 청산리농장,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 대동강 타일공장 등 경공업개발 현장들을 보여주었고, 지난 달 59번째 방북하여 참관하며 취재한 옥류아동병원, 미림승마구락부, 문수물놀이장 등데 대한 소감을 들려주고, 마식령 스키장, 여성종양연구소, 전승기념관, 인민군열사묘, 1천정보 규모의 대동강종합과수농장,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경공업 추진 등을 설명해 주었다.
서방언론들과 남녘의 보수언론들의 보도가 얼마나 왜곡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뭉친 일심단결의 현주소를 포함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과학, 음악예술 및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위력을 갖춘 첨단군사무기들과 광명성3호2호기와 은하발사체에 의한 인공지구위성 발사 성공내용 등을 소개해 주었다.
장성택 처형과 그 이후 북녘사회 움직임은 그 어느때 보다 안정된 모습이었고, 오히려 지난시기 보다 최고지도자와 군-민이 하나로 굳게 단결단합된 모습이었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북조선 현주소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59번째 방북취재 소감은 “북조선의 미래는 밝고 창창하다”라고 정리하는 한편 재미동포들과 한국, 재미동포들과 조선과의 3자관계는 우리 해외동포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자문하기도 했다.
재미동포들에게 한국은 조국의 일부이다. 재미동포들에게 조선도 조국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남과 북은 하나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의 조국을 둘로 나눈 세력은 외세이다. 그 외세 가운데 미국 지배세력이 가장 잔인하고 혹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동포들은 미 당국을 향해 한반도 평화를 촉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맺어 양자가 사이좋은 관계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재미동포들 자신이 견지해야 할 역사적 의무이며 책무이기도 하다. 재미동포들은 또한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촉구하며 호소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재미동포들은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북갈등을 조장하고 대결분위기로 몰고가려는 움직임도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정상적인 재미동포들이라면 미국과 한국이 상호주권을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군사주권을 미군에 의해 장악당해 온지 수십년이 흘러도 말한마디 하지 않고, 효순이 미선이와 같은 한국소녀들이 미군장갑차에 깔려 죽어도 무감각한 자세를 보이며 한미관계가 주종관계로 되어도 그것을 외면한다면 코리안-아메리칸, 즉 재미동포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정상적인 재미동포들이라면 조국의 한 부분인 조선과 미국과의 관계가 평화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 당국이 언제까지 대북적대시정책을 고수하며 고립하고 압살하는 것을 수수방관만 할 것인가?
우리 재미동포들은 2014년 1월13일로 이 땅에 노동이민자로 온 역사, 우리의 이민역사가 벌써 111주년을 맞았다. 이제 우리는 재미동포들로서 이 땅에 살면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이 잘못되면 당당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할 ㅜㅅ 있어야 하고, 한미관계가 불공정하면 그것을 수정할 권리를 찾을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우리 재미동포들의 조국은 한국도 아니고, 조선도 아니다. 한국과 조선이 옹근 하나의 조국이다. 바꾸어 말하면 남과 북이 하나의 조국이다.
하여 우리 재미동포들은 한국과 조선이 화해협력하여 서로 손을 잡고 자주, 민주, 통일로 갈 수 있도록 3자연대의 한 주체로서 노력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6.15선언과 10.4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는데 재미동포들도 해외동포들과 어깨걸고 나가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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