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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박근혜는 지금 ‘액땜’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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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5-07 15:29 조회4,0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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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박사(전한신대학교교수)는  "박정희의 죽음은 이 땅의 피고름이 되어 산천을 물 드려 썩게 하고 있다. 금수강산은 공해 강산이 되었고 지역은 지역대로 갈갈이 찢어지고 남북 화해는 가물가물 멀어져만 가고 있다. 어찌 박정희의 죽음이 세월호의 그것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반드시 팽목항에 다시 내려가 한 말을 철회하고 와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영혼들의 부활이 박근혜에게는 최대의 공포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액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박근혜는 온 국민들이 과부가 되는 것을 보고 드디어 그 동안 쌓인 여한을 다 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고 질타한다. 그의글 전문을 싣는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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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지금 ‘액땜’을 하고 있는가?
 
 
*글: 김상일박사(전한신대학교교수)
 
 
세월호 참사가 나자 말자 국민들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린 인물은 두 말 할 것 없이 대통령 박근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절대로 그 말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박근혜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을 박근혜는 두 번쩨 팽목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하고 말았다. 그런데 언론들도 사람들도 그 말을 귓전으로 흘려버리듯이 듣고 넘어 가는 것같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말을 문제 삼는 언론은 없다.
 
그 말은 무엇인가. 그 말은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겪어봐 잘 알고 있다” 이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는 속담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면 대통령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정이 같은 것일까? 어머니 육영수 여사이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든 그렇게 비명에 죽은 근본적인 이유는 ‘독제’였다. 독제만 안 했어도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죽이고 고문을 하지안했어도 그 집안에 그런 흉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 집안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 과연 세월호와 함께 수장된 묻 영혼들도 그렇게 죽을 만한 이유가 있었단 말인가? 인생에 가장 즐거운 시간 가운데 하나가 고등학교 때에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다. 가장 추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아마도 첫날밤 숙소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아침 일찍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한 장면을 생각하면 온 국민들이 지금 밤 잠을 설치며 가슴 아파 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죽을 만 한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 속에 잡히지 않는다. 해경이 조금만 빨리 서둘렀어도 몇 사람들은 구할 줄을 국민들은 믿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구조 0명이다. 세계 조난 사고에 유래 없는 일로 기록 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가 부모 잃은 슬픔과 세월호 학부모들의 그것을 동격으로 취급하였다. 아마도 그녀의 말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구나 하고 대통령을 측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도무지 사리분별을 못하는 국민들 가운데는 쉽사리 이런 얄팍한 연민의 정에 이끌린다.
 
지난 번 대선 때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연민의 정에 호소하여 톡톡한 재미를 보았다. 시집도 못가고 부모도 다 잃고 아무 가진 것 없는 박근혜를 찍어야 한다고 서민들이 앞장 섰었다.
 
역시 선거의 여왕답게 두 번째로 팽목항에 내려가 정많은 국민들에게 다시 그 정에, 연민의 정에 호소하였다. 이것은 가족들을 위로하러 간 것이 아니고 다음 지방 선거를 앞 둔 완전 선거 유세하러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겨 질 정도였다. 그녀는 선거까지 만의 여왕이었다. 선거 후 국민들의 생명에는 아랑 곳 없는 한 갓 여왕으로 지금 둔갑해 버렸다.
 
언론도 그 누구도 박근혜의 말을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발언이 선거 약발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박근혜의 이 번 발언은 선거용 이상으로 매우 위험할 정도로 그냥 듣고 넘어 갈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먼저 부모 잃은 자식의 슬픔과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은 동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로 상하를 뒤 바뀐 것 같지만 그 슬픔의 질은 전적으로 다르다. 미주 한국일보에 실린 모니카 이라는 분의 칼럼(5/5) 속에 있는 글을 여기에 인용한다. “신이 언어를 만들 때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 정했으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슬픔이 너무 커서 아무런 호칭을 짓지 못했다”
 
장사익의 노래 ‘어머니 꽃구경 가요’(김형영시)를 여기서 다시 듣는 것이 자식이 부모에 대한 생각과 자식이 부모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고려장이 있던 시절 아들이 지게에 어머니를 지고 꽃구경 가자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고,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린다.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간다. 아들이 꽃구경 나온 것이 아니고 자기를 버리러 온 것을 안 어머니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그래도 자식 잃은 부모 마음과 부모 잃은 자식 마음이 같다고 할 것인가?
 
 아들은 어머니 혼자 산 속에서 굶어 죽는 것은 걱정하지 않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돌아가는 길 잃을 까봐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자식의 마음의 차이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자기가 부모 잃은 슬픔을 세월호의 부모가 자식 잃은 그것과 동격시 했다. 매우 잘 못된 일치이다. 문상 가 할 말이 없으면 가만히 라도 있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부모들의 슬픔을 자기의 그것과 동격시 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천만인 것은 그녀는 지금 죽음을 감상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가족 잃어 마음 아픈 것이 어떠했는지를 온 국민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에 심리적 보상 작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박근혜는 온 국민들이 과부가 되는 것을 보고 드디어 그 동안 쌓인 여한을 다 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한국의 전통 민속 신앙에 의하면 횡사 맞은 집의 사람들을 동정을 하기 보다는 마을에서 오히려 경원시 한다. 이런 집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부정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액귀가 씌여 다른 사람들을 해친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 두고 미신이라 고 보기보다는 과부는 모든 사람들이 과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그래서 심리적 보상과 위로를 받기 바라는 심보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고약한 마음을 두고 ‘심보’라고 한다. 기독교 교리 가운데 구속론이라는 것이 있는 데 구속론 가운데 ‘인질설 ransom theory’이 있다. 마귀에 잡혀간 인간을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몸값을 주고 다시 찾아 왔다는 설이다. 인질설은 원시종교 특히 샤머니즘과 같은 종교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 무시해 버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이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는 바로 왕이 지었지만 그 죄 값으로 죽은 것은 이집트의 뭇 어린 생명들이었다. 온갖 재앙을 내려도 바로의 마음이 더욱 강팍 해 지는 것을 보다 못한 신은 이집트의 모든 갓난아이들을 죽이는 재앙을 내린다. 한 집안의 가장이 전염병으로 아파 죽게 되면 그 가족 가운데 하나가 대신 죽어야 가장이 낳는다는 속신이 있다. 그 때에 아무 죄 없는 여식 아이 하나를 대신 죽도록 한다. 모두 심리적인 보상이다. 강자가 만들어 내는 논리일 뿐이다.
 
민간 신앙에서는 죄없이 당하는 고통을 ‘액땜’한다고 한다. 인질설은 원시 종교의 액땜을 자기희생으로 승화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질설은 죄짓는 자 따로 있고 죄 때문에 희생당하는 자 따로 있다는 교리이다. 기독교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은 어린 양은 반드시 부활한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어린 양들의 죽음은 결코 헛 되지 않을 것이다. 1980년 광주의 죄 없는 양들의 죽음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게 했듯이 세월호는 영원히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새 역사를 창조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
 
 박정희의 죽음은 이 땅의 피고름이 되어 산천을 물 드려 썩게 하고 있다. 금수강산은 공해 강산이 되었고 지역은 지역대로 갈갈이 찢어지고 남북 화해는 가물가물 멀어져만 가고 있다. 어찌 박정희의 죽음이 세월호의 그것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반드시 팽목항에 다시 내려가 한 말을 철회하고 와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영혼들의 부활이 박근혜에게는 최대의 공포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액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무덤을 막은 바위돌 문이 열리듯이 세월호는 죽지 않았다. 다시 어린 양들은 갈릴리 안산으로 돌아 와 역사를 바꾸어 놓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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