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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탈북의 계절, “역병이 돌때면 생쥐가 성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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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4-08 16:46 조회2,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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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박사(전한신대학교 교수)는 "일제 35년 동안 참아 오던 사람들 가운데 변절자가 제일 많이
생긴 때가 해방 직전 수 년 간이였다. 특히 중일 전쟁(1937)을 전후하여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변절자들이
무더기로 생겨났다. 33인 가운데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인물은 한용운뿐이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논단] 탈북의 계절, “역병이 돌때면 생쥐가 성하는 법”




*글:김상일 박사(전한신대학교 교수)


<##IMAGE##> 옛날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 까지 오다 보면 그 동안 느긋하던 마음이 영등포역 쯤 에서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종착역 직전에서 그 동안 참아오던 마음이 더 다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생하며 살아오다 조금 잘 살만 하게 되면 오히려 자살자가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일제 35년 동안 참아 오던 사람들 가운데 변절자가 제일 많이 생긴 때가 해방 직전 수 년 간이였다. 특히 중일 전쟁(1937)을 전후하여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변절자들이 무더기로 생겨났다. 33인 가운데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인물은 한용운뿐이라 할 정도이니 말이다.

리경락, 이 인물은 김일성 주석과 화성의숙에서도 같이 지냈고 길림에서 청년 학생 운동도 같이 했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일제에 체포되자 말자 바로 변절을 하였다. 리경락은 고난의 행군 전해인 1937년 평양 만경대 김일성 주석의 할머니를 끌고 만주로 가 그 당시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 유격활동을 하던 김일성 부대를 돌면서 할머니의 육성을 통해 회유 선무를 하던 인물이다. 김일성사령관은 마당거우에서 이런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고 한다.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리경락이 고난의 행군 기간(1938-1939)에 김일성부대를 제 발로 걸어 찾아 온 것이다. 부대 안에서 한 편으로는 김일성 사령관의 동창이 찾아 왔다는 소식에 궁금증과 함께 질시와 분노의 눈총이 함께 그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보다 변절된 동창생을 만난 김사령관의 태도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보다 부대안의 관심사가 되었다. 최춘국은 당장 저 놈을 처치하자고 까지 했다.

이 때 김일성 사령의 첫 마디는 “춘국 동무 흥분하지 마시오”였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의미심장하고 오늘 탈북의 계절에 탈북자들에게도 하는 말이 될 것이다.

“내가 긴 이야기를 하였지만 결국 한 마리의 생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수많은 쥐새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역병이 돌 때면, 생쥐가 성하는 법입니다. 오늘 같이 파쑈의 열병이 무섭게 번져가는 때에 쥐새끼가 날 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허허허, 옥암동에 사는 한 농민은 오뉴월 개천에 벌레가 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고난의 행군’, 50쪽)

천세봉은 ‘고난의 행군’에서 사령관의 말이 끝난 천막안의 분위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숲속도 천막안도 몹시, 지나칠 만큼 몹시 조용하였다”고. 오늘날 탈북의 계절에 이를 바라보는 북조선 당국과 인민들이 탈북자들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역병이 돌면 쥐새끼가 성하고, 오뉴월 개천에 벌레가 성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그러면 그 열병의 이름은 무엇인가. ‘파쑈’ 비록 그 대상은 일제에서 미제로 변했지만 파쑈의 성격과 형태는 하나도 변하고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는 구라파에서 호열자가 만연할 때에 거리에 쥐새끼들이 득실거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역병이 끝나 갈 때면 생쥐새끼들이 도시를 먼저 빠져 나간다. 이제 미국도 망해가고 있고 자본주의도 몰락해 가고 있다. 뭐 먹을 것 없나 하고 자본주의 구석을 찾아 왔지만 생쥐들은 결국 시궁창 밖에는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시절과 시대의 분간을 제대로 못 한 것이 패가망신의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 쥐 대가리나 새 대가리 수준 가지고는 이를 분별도 분간도 못한다. 매미가 삼복에 많이 울어대는 이유도 제철이 끝나가는 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리경락은 자기가 유격부대 앞으로 찾아 올 때만 하더라도 김사령과 대원들이 자기의 변절한 정체를 모르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여전히 김사령관이 옛정을 가지고 동창생으로 대해 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대원들은 김사령관이 리경락을 어떻게 처리할 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 때 장경수가 나서서 “그놈하고 앞으로 공작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이보익 할머니 연행 소식을 처음 전한 인물이 바로 장경수였다. 장경수는 지하공작원이었고, 대담무쌍한 정찰병이었으며 용감한 전투원이었다. 머리와 용기를 겸한 인물이 장경수였다. 그런 장경수가 김사령관이 리경락을 처리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궁금해 할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장경수는 천막 안에 리경락을 안내하였다. 화성의숙과 길림시절 이후 무려 10 여 년 만의 해후였다. 이 해가 1938년. 화전의 뒷산, 그리고 길림의 우마항 거리를 함께 거닐던 추억들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리경락은 입구에 들어 올 때에 7년대에 진열돼 있는 무력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고 규율도 잘 서 있는 것에 주눅이 잔뜩 들어 질려 있는 형편이었다.

잘 못 알고 잘 못 짚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왜놈들의 정규병과 같은 수준이라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배포유하게 틀고 앉아 있지만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리경락이 김일성 장군과 친분이 있고 거기다 동창생이라는 신분이 일제 에게는 더 없이 이용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리경락은 이것을 밑천으로 일제로부터 그 동안 특대우를 받아 오며 호의호식하고 지내오던 터였다. 그는 지금 잘 못 들어 왔다 후회마저 하고 어쩌면 죽어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앞섰다.

그러나 리경락은 “사냥군이 날고기를 먹여가며 매를 기를 때 먹인 것 보다 더 많은 고기를 잡아내기 위한 것임을”을 모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매대가리 수준이어서 이를 모른단 말이다.

미국이 한국을 그 동안 먹여 살려 놓았으니 이제 먹인 것만큼 사냥해 오라는 것이 소위 FTA가 아니냐. 그 뿐이랴. 온갖 무기 사들이라는 것 모두 먹은 만큼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 아니야. 그러는 동안 매는 포수의 한 방에 생명 자체를 잃고 만다. 대부분의 변절자들이 이 논리를 모른다. 그래서 모든 변절자들의 말로는 불행한 법이다.

리경락도 1937년에 만경대 집으로 가 이보익 할머니를 그렇게 한 것도 일제가 시켜서 한 것이지 제 의지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매사냥을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변절을 해 유격대로 돌아 온다 하더라도 자기의 진심을 믿어줄지 의심스럽고 일경에 다시 돌아가기에는 자기의 정체가 노출돼 버렸다. 변절자의 마지막 수순이 바로 이런 ‘진퇴양란’이란 것이다.

“리경락 군이 우리 혁명군을 찾아 온다는 것은 뜻밖이군, 그래 그 사이 잘 있었소” 그리고는 주위 사람들 한테 “동무들 인사들 하시오. 우리 유격대 생활 10년에 이런 손님이 찾아 온 것은 처음입니다. 이 사람은 화성의숙에서 령감들 한테서 총애를 받던 리경락군입니다. 길림에서 나와서도 독립군에서 중대장까지 지낸 적이 있고 조선 독립을 위해 많은 연설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의 유격대원들 오중흡, 박덕산, 최춘국을 리경락에게 소개하였다. 리경락은 뻔뻔스럽게 이들에게 동지라는 말까지 써가며 이들의 용맹무쌍함을 들어서 잘 안다고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혁명동지들 만나서 반갑다”고 까지 했다. 그런데 최춘국이 참다 못해 “내가 최춘국이오다. 그래 당신이 저 관동군과 무슨 관계이 있소다”하고 노려보면서 말했다.

“뭐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저는 김일성장군이 말씀하신대로 관동군 보도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우에다 대장과 이소다니 참모장의 위임을 받고 조선인민혁명군과 관동군 사이의 화의에 대하여 협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선을 넘어서 온 것입니다”라고 안경테 너머로 이 사람 저 사람 바라보면서 말을 널어놓았다. 김일성 장군과 직접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일성장군은 리경락의 말끝을 놓지지 않았다. “보도과 같은 것을 별 것이 아니고, 뭐 아무개 대장과는 굉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리경락 군이 그자들과 직접 통한다고 하는 데 그 자들이 총리대신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에대 대장이 총리대신이 된 것은 아니지만 관동관 사령관이라면 만주를 좌지우지 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만주의 실제 주인이 관동군 사령관이 아닙니까” 그럼 “그 자들이 무슨 위임장 같은 것을 써 주고 당신을 우리에게 들려 보냈단 말입니까”

이제 리경락은 김사령관의 유도 심문 안으로 한 걸음씩 휘말려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김사령의 끝내 목표는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리경락이 우에다 한 테서 친필로 된 위임장을 하나 받아 오자는 데 있었다. 리경락은 “위임장 말입니까” 하면서 “미쳐 그것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장군님과의 친분 관계 때문에 위임장 같은 것은 없어도 될 줄 알았는데, 그런것은 언제 어느 때든지 받아 올 수 있습니다”.

김일성장군은 이제 올 데 까지 다 왔다고 화제를 딴 데로 돌리면서 옛 화성의숙 시절 얘기며 리종락이 했던 명연설 구절구절 하나를 그대로 생생하게 기억해 대화를 이어 갔다. 그 때에 대화에 가장 많이 나온 인물이 을지문덕과 강감찬이었다. 우리 다 같이 그런 위인들이 되자고 했던 추억담들이었다. 그러던 당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느냐의 암시적인 대화가 이어져 갔다.

찻잔이 몇 잔 계속 돌자 리경락은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는 듯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오늘날 누구나 들어야 할 말이고 특히 탈북자들을 보는 우리의 이론과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도 들을 말들이다.

“사실 나도 인간이 아닙니까. 인간이란 별 수 없더군요. 몇 달 동안 불박이로 매를 맞고, 잠을 못자고 물을 매일 몇 초롱씩 들이키며 고문을 당하고 보니 내 입에서도 열변이 기어들어 가고 맙디다. 엇지겠습니까. 나 역시 먹고 자고 물과 공기를 마셔야 살아가게 마련된 인간이 아닙니까” 필부필부들의 터울 없는 말이고 누구에게나 그럴싸하게 통하는 말이다. “사흘 굶어 도둑 안 되는 놈 없다”는 속담대로 말이다.

리경락의 이 말에 김일성장군은 어떤 말로 대답을 했을까? 그것은 오늘날 북조선 인민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이고 사생관이지 않을까. 그리고 저 소위 탈북자들을 바로 보는 그들의 눈이 아닐까.

“인간이라....동무들, 보시오. 여기서 계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보는 것을, 이 사람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리경락군의 이 말은 화전에서의 열변보다 몇 갑절 더 많은 것을 생각게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탈북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에 대해, 김사령은 죽어서도 오늘의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이렇게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안 되는 계선이 다른 논리 앞에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을 할 것인가. 인간이 때문에 좌로 갈 것인가 우로 갈 것인가.

김일성 장군의 이 말을 들은 리경락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기뿐만 아니라 의군골 에 있던 300여명의 주민들이 변절한 얘기며, 그 가운데 혁명군도, 자기와 같은 동창생들도, 김일성 장군을 흠모하던 사람들도, 심지어는 8도구에서 김형직 선생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면서 인간이기 때문에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로 자신의 변절을 합리화 하려 했다. 그리고 과거에 김일성 장군과 연계가 있는 사람들을 우에다 대장은 특별 예우와 대우를 한다고 했다. 과연 이 논리가 김장군과 주변 3인들에게 통했을까.

김일성 장군은 자기 자신을 두고 3인칭으로 사용하는 어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그럴 경우에는 매우 노했을 경우라고 한다. “나 김도올, 나 강기법”과 같은 3인칭 어법을 사용하지 않는 데 만약에 이를 사용할 경우는 많이 화를 내고 있을 때라고 한다.

“허허허, 김일성장군이 진작 그것을 알았으면 저 우에다나 이소다니 한테 감사장이라도 한 장 써보냈을 것을” 하고 3인칭 어법을 이 날 사용하면서 리경락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그래 당신이 그 놈들 한테 돈을 얼마나 받소” “돈이야 물쓰듯 하지요” 이렇게 말함으로 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혁명군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봉급이야 군속 봉급 정도이지만, 특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잡비는 물쓰듯 합니다”

김일성 장군이 자기와 같이 변절을 하면 특무기관에 일하게 되고, 돈 같은 것은 설거지 물 쓰듯 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김장군은 몰라도 자기 말을 듣는 주변 군 간부들은 회유할 수 있다고 리경락은 판단한 것이다. 돈이 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리경락의 말은 복음과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 이 말을 미국에 와서 한다면 이 말에 회유 안 될 사람이 3억 가운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다음 리의 말은 이어진다. “혁명가들은 돈 같은 것은 멸시 하겠지요. 맑스가 지적한 것과 같이 돈의 위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리경락의 말에 대하여 “리경락 군이 아직도 맑스의 학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 합니다.” 김일성 장군이 대화를 여기 까지 몰고 온 것은 리경락으로 하여금 우에다 한 테다 편지 한 장을 친필로 쓰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편지를 한 장 쓰되 나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내가 저 백두산 어방에 있는 모양인데 이 곳 혁명군을 통해 련계를 짓는 중이니 1주일가량 기다려 야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쓰시오. 알겠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자기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것인 줄 안 리경락은 망설이는 듯하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화는 끝났다.

매가 포수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 왔다고 판단한 김일성 주석은 리경락과 더 대화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잠자리로 들어갔다.

여기서 말하는 관동군이란 무엇인가? 지금 유세 중에 한 창 바쁜 박근혜의 아버지가 대위로 해방 직전 까지 근무하던 곳이 아닌가. 그는 조선의 피를 가지고 일천황 앞에 황국 신민이 되겠다고 변절한 자이다. 그의 변절은 한 번에 끝난 것이 아니고 여순 반란 사건 때는 동지들을 배신하고 살아남아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런 그가 국민의 우상이요. 어느 지역에서는 그의 딸에게 몰표를 몰아주고 있다. 그렇게 아직 그렇게 추앙 받는 이유는 우리를 지금과 같이 잘 살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그는 지금도 통하고 있단 말이다. 그의 딸이 이끄는 당에서는 전 김일성대학 교수였다가 탈북한 조아무개를 비례공천 상위권에 임명했다.

그러나 김일성 사령관은 말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 번 선거에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 이 번 선거에서 우리는 한 번 인간 본질의 문제에 질문을 던져 보는 선거를 한 번 치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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