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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7]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br><br>빨치산 부모 둔 장광선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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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1-06-18 15:33 조회3,6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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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빌=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북조선 태권도 방미 시범단 취재차 필라델피아 지역을 방문 중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 독립신문(김경재 발행인)에서 잠간 일하다가 그만두고
뉴욕을 비롯하여 미주지역 민족언론으로 널리 알려졌던 해외한민보(고 서정균 발행인)에서 다년간 일했고,
재미한청, 한겨레연합에서 활동해 오다가 최근 소식이 없던 장광선 선생(66)을 만났다.

[기획-7]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빨치산 부모 둔 장광선 전 언론인




<##IMAGE##> [펜스 빌=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북조선 태권도 방미 시범단 취재차 필라델피아 지역을 방문 중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 독립신문(김경재 발행인)에서 잠간 일하다가 그만두고 뉴욕을 비롯하여 미주지역 민족언론으로 널리 알려졌던 해외한민보(고 서정균 발행인)에서 다년간 일했고, 재미한청, 한겨레연합에서 활동해 오다가 최근 소식이 뜸했던 장광선 선생(66)을 만났다.

리준무 선생 부부의 안내로 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과 함께 필라델피아 근교에 위치한 조그만한 마을, 뉴져지 주 펜스 빌을 들렸다. 재미동포들이 불과 세 가정 밖에 없는 백인촌에서 30여년 이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 왔다. 그는 지난 2007년도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하며 미주동포사회의 자주, 민주, 통일 연합운동에 가담해 왔다. 그 이후에는 지금까지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라 한겨레동포연합 단체에 한달에 한번 참가하며 비교적 조용한 자세로 운동에 가담해 왔기 때문에 그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1976년 이민을 왔지만 그 이전시기인 1972년 한국농촌진흥청과 미국 4H클럽과 교환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연수로 와서 2년 지내다가 한국으로 들어가 2년후에 다시 미국이민을 오게 되었다. 첫 미국 방문 때와 이민 올때 신원조예가 무척 어려웠다고 그는 회고한다.

장광선 선생은 1946년 8월3일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남녘에서 생활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부친 고 장영 선생과 그의 어머니 이양순 여사(89세)는 모두 항일빨치산 출신이며 전쟁시기에는 아버지는 인민군이 내려 왔을때 마을에서 3개월 동안 지역인민위원장을 그리고 어버니는 여성위원장을 지낸바 있었다. 이 때문에 남녘에서의 생활은 편안하지 못했다. 아버지 장영 선생은 1984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연로하여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한국서 고향인 장흥에 살다가 강진으로 가서 강진중학교, 강진농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집안일을 해 왔다. 그러나 그의 집은 순경들의 감시를 받아 왔다. 해방 되기 전 항일투쟁시기에는 그의 아버지 고향인 장흥군에 "이 장군"이라는 분이 활동하였는데 그는 이에 대해 "아마도 김일성 주석과 관련되는 분으로 항일투쟁시기에 고향지역을 지도하는 분 같았다"고 어린시절을 되돌아 본다. "아버지가 일제 징용에 끌려갈 상황에 그 이 장군이라는 분이 담배가루를 먹고 엑스레이를 찍으면 일본넘들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고 귀띔을 주어 그렇게 하여 징병에 끌려가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 그것 때문에 위장병을 앓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고 전쟁시기에 마을 인민위원장, 그리고 여성위원장을 지낸 경력 때문에 온 집안이 풍파를 겪었다. 5촌되는 분들, 고모 할머니 아들 등 집안 친척들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가 하면 일부 친척들은 월북해 갔던 사실들을 상기시켜 주며 그는 지난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이러 저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털어 놓는다. 그는 그러한 문제 때문에 해외에 나갈때, 그리고 이민올 때 신원조로 애를 먹었다고 돌이켜 보면서 아는 사람이 보증을 서는 바람에 간신히 해외 나들이가 가능했고 이민 길에 나설 수 있었다고 밝히면서 지긋 지긋한 남녘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되새겨 준다.

이민 초기에는 민주언론, 민족언론에서 일하다가 그 다음에는 윤한봉 선생이 조직하여 운영하던 한겨레운동 미주연합에서 활동해 왔었다. 그는 요즘에는 한겨레신문 블러그(http://blog.hani.co.kr/newbornking/)에 들어가 자주,평화통일 문제를 위시하여 "건강십계명", 종교문제, 수필, 소설 등 총538개 글들을 올리면서 문필활동도 벌여 왔다.

그는 또 미국서부지역에서 김운하 선생이 발행하던 신한민보, 카나다에서 고 전충림 선생과 전순영 여사가 발행하던 "뉴코리아 타임스", 그리고 고 서정균 선생이 발행하던 "해외한민보"에 대해서도 이러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옛날 분들의 활동상황을 돌이켜 보면서 80년대 초 이민생활과 민족운동을 하며 고민할 때 선우학원 박사가 자신에게 자문해 준 일화를 포함하여 그 동안 얽히고 섥힌 이야기들도 털어 놓았다.

<##IMAGE##> 장광선 선생은 또 김경재씨가 운영하던 "독립신문"에서 일할 때 발행인의 대북 적대적 자세에 대한 문제점도 비판하는 한편 "해외한민보"의 고 서정균 발행인의 올곧은 민족관과 언론인으로서의 철저함, 그리고 철자법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다루는 자세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운 이야기들도 들려 준다.

그는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고 항일빨치산 활동을 했던 어머니의 건강을 돌보아 주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하면서 "한달에 한번 정도 필라델피아에 나가 한국민주화 운동과 조국통일 운동에 미력한 힘이나마 돕고 있다"고 겸손한 자세로 귀띔해 준다. 민족통신 일행은 장광선 선생과의 30여분 가량의 만남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사와 8.15해방 이후의 민족분단사의 축소판을 되새겨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장광선 선생의 연락처는 (856)308-6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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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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