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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금강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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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6-05-31 19:14 조회2,55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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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평화네트워크 김경미 기자] 금강산 기행문을 올린 지 근 2달이 지났네요. 2부를 올려야지 하면서도 밀린 일들과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느라 금강산에서의 기억들을 되새길 여유가 <##IMAGE>없었네요. 쓰긴 써야 하는데... 마치 배에 가스가 찬 것처럼 생각에 가스가 가득 찬 느낌? 부글부글... 살며시 아~‘2부에서 계속됩니다’라는 이야기를 쓰지 말걸 그랬나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해보기도 하구요.^^: 하지만 오늘은 작정을 하고 다시 지난 일기와 메모 그리고 저의 생각들을 꺼내보기로 하였습니다. 너무 뒷북을 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노파심으로 조마조마하기도 하지만요. 핫~ 옆에 앉아 계신 실장님께서 놀리시네요. 금강산 다녀온지가 언젠데, 지금 기행문 2부를 쓰냐고... 으흑... 실장님 나빠요~ (.. )( ..) 하지만 잠시 쉬어가시라는 의미로 다시금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너무 생뚱맞다 하시지 마시고 편안한 맘으로 읽어주세요. ^^

‘우리는 하나!’를 부르던 가무단 여성 동지들 그리고...

금강산 호텔에 여정을 푼 첫날 저녁엔 다른 시민단체 간사님들과 금강산 호텔에서 하는 가무단 공연을 보았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가무단 여성 동지들과 남성 동지들, 그리>고 여성 밴드로 구성된 혼성 그룹(^^?) 이었습니다. 남성분들은 중년의 나이 혹은 그보다 좀더 나이 드신 분들로, 여성분들은 20대 초중반의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남한 가요계엔 보통 2개의 큰 무대로 나뉘어져 있자나요. 보통 중년 이상의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가요무대와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인기가요 이렇게요. 이런 남한 가요계에 적응이 되어 있다보니 세대를 아우른 북한 가무단 가수들의 구성이 조금은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런 구성에 과연 노래 실력은 어떨까? 어떤 스타일로 부를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자자자잔~~ 아!!! 역시 우리 한민족의 전통 가락은 뽕짝이야! ^..^ ‘휘~ 휘휘 휘파람~’ 같은 우리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북한 가요들과 남한 가요까지 구성지게 부르는 가수 동무들의 노래 실력은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할 만큼 신나고 흥겨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음향 시설이었습니다. 공연 시간보다 조금 늦게 들어가서 공연장 끝 좌석에 앉았었는데요, 소리가 너무 크고 울려서 맨 뒤쪽에 앉아있는 저희들에겐 오히려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더군요. 좋은 목소리가 부족한 음향 시설 때문에 빛이 바래다니... 공연 내내 사뭇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다음날 또 한번 가무단 공연을 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신나게 공연을 보던 것이 인상적이었던지 호텔 지배인께서 다시 한번 공연을 보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간 남한 관광객들이 가무단 공연을 첫날에 거의 다 보셨던지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앞에서 두 번째 좌석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와! 가수들과 밴드 공연자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공연 하시는 분들 한분 한분의 웃음, 열정, 눈빛까지 다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며 저 분들은 북한에서 어떤 신분의 사람들일까, 매번 남한 관광객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들이 들까 등 노래를 들으면서도 수많은 질문들이 저의 머리를 지나가더군요.-.-;; 공연 하나를 보는 순간에도 저가 속한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요. ^^;;

여튼 그렇게 열심히 공연을 보다보니 어느덧 ‘우리 다시 만나요’라는 마지막 노래 순서가 되었더군요. 그런데... 어? 그 노래를 부르시는 가수, 밴드 모두의 코가 빨개지더니... 어느 한분은 눈을 깜빡깜빡하시는 것입니다. 눈물이 고였던 것인지... 그 분과 눈을 마주치면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부아가 났습니다. 저 막이 내리면 더 이상 다가 갈 수도, 서로의 느낌들에 대해서 나눌 수도 없는데.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우리 사이에 쳐진 이 유리벽은 무엇인가? 서로에 대해서 조심해야 하고, 어느 선 이상부터는 대화할 수 없는 이 유리벽... 많이 답답해져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함께 갔던 간사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분들은 왜 그렇게 코끝이 빨개졌을까. 그저 감성이 풍부해서일까. 그들을 눈이 빠져라 쳐다보는 남한의 어쩜 그들과 동년배일수도 있고, 동생 혹은 언니일수도 있을 우리들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등... 많이 궁금했고, 많이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물어볼 수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지요. 아~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공연 마지막에 내리던 그 막, 우리들이 가까이 갈 수 없게 막았던 그 막을 내려 바닥에 쭉 깔고,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신나게 윷놀이 하는 모습을요~ ‘모야 모! 아잇~ 도자나... -,.- 윷이야 윷! 얼쑤!!! 너무합네다! 동무! 아이~ 게임은 게임이지요! 푸하하~’ 남북이 함께 어울리는 소리! 이보다 더 듣기 좋은 곡조가 있을까요.

하나... 둘... 셋... 스물셋... 23그루...

여행 마지막 날 오전은 삼일포-해금강 코스와 만물상 코스 이렇게 두 코스로 나뉘어졌습니다. 만물상을 갈까 해금강을 갈까 고민을 했지만 산을 봤으니 이제는 바다를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삼일강-해금강 코스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어린 시절 멀미에 대한 아픈 기억들로 차타기를 어려워하는 저로서는 해금강까지 꽤 많이 가야 된다는 이야기에 좀 걱정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웬걸... 버스 내릴 때까지 창가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금강산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학교들, 북한 사람들을 버스에서마나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볼 수가 있었거든요. 사실 저 같이 산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 있어 남한의 설악산과 북한의 금강산이 머 그리 달리 보였겠습니까. 그것보다는 그 속에 담겨진 북한 사람들만의 특별함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거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비록 먼 발치에서였지만 북한 사람, 북한 마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해금강 코스는 정말이지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언제 금강산 여행을 가실 분들! 참고하세요. ^.=

그런데 버스를 타고 북한 마을 여기저기를 지나면서 유달리 저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북한의 민둥산이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금강산은 당연히 푸른 나무들로 빽빽이 들어서 있었지만 마을, 논과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산들, 그리고 능선들은 거의 다 벌건 민둥산이었습니다. 아마 에너지난 때문에 산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다 땔감으로 써서 그건게 아닌가라고 나름대로 추측해 보았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스물셋.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작은 산 하나에 심겨져 있는 나무들을 세어보았습니다. 총 "23"그루더군요. 산에 심겨진 나무를 헤아릴 수 있다니. 남한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죠. 60~70년대 남한이 어려울 때를 아시는 분들은 어쩜 잘 아실 것 같아요.(그럼 북한의 현 경제상황, 사회 발전 수준이 우리 나라의 60~70년대라는 말? -.-;) 사정이 이러하니 북한에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정말 고스란히 피해를 당할 수밖엔 없겠더군요. 어떡하지요. 식목일이 올해부턴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닌데 공휴일을 폐지하는 대신 북한에 나무 심으러 갈수는 없을까요? 아님 묘목 보내기라도... ‘온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어느 회사의 광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푸른 산이 아닌 누런 흙산을 바라보던 그 시간은...

시원한 옥류관 냉면과 무례한 몇몇 남한 관광객들

해금강과 삼일포 관광을 마치고 옥류관으로 갔습니다. 북한식 냉면으로 유명한 곳이죠. 현대아산에 의해 운영되는 온정각 휴게소의 남한 음식점과 달리 옥류관은 북한이 직접 운영을 하는 곳이더군요. 접대해주시는 분들도 다 북한 접대원들이었구요. 예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냉면을 먹기도 했다던 음식점답게 깔끔하고 화려하게 잘 꾸며놓았더군요. 북한식 냉면은 어떤 맛일까 기대했는데, 역시 맛있었어요. 워낙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라 저의 미각을 신뢰하기는 좀 그렇지만 깔끔한 맛이 확실히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그 날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주문을 했을 때 여성 관광객들에게만 조그만 파이를 주시더군요. "이것은 여성 동무들에게만 드리는 겁니다."라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옆에 계신 남성분이 우린 왜 안주냐고 물었더니 "오늘이 세계여성의 날이라 여성에게만 드리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신기해서 접대원 동무에게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북한에서는 이런 것도 주나요?" 그랬더니 그 분이 오히려 "그럼 남한에서는 안줍네까?"하고 되물으시더라구요. "저희 북에서는 3.8일 여성의 날에는 여성을 위한 행사들, 혜택들이 있습네다."라고 하시면서요. 이런 기념일을 챙길 여유가 있는걸까. 알 듯 모를 듯 여튼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


그런데 냉면을 먹으면서 한 가지 언짢은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북측 접대원들을 대하는 몇몇 남측 관광객들의 태도였습니다. "야! 이거 좀 가져와! 야야!" 정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물론 연세가 있으셔서 손녀뻘의 접대원들이 편하게 여겨져서 그러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같은 여성으로 저가 다 민망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보시던 와중에 갑자기 내 뱉으신 말~ "... 야! 같이 내려가자!" 헛~~ 음식을 내려놓던 접대원 동무 움찔~ 옆에서 말없이 냉면을 먹던 저도 움찔~ 하! 그 분께서 말씀하신 의도가 백번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무심코 하신 말씀이 그 말을 들은 당사자를 매우 곤란하게 할 수도 있음을 왜 모르시는지요. 보다 못해서 그 관광객 분들이 자리를 뜨신 이후에 저랑 옆에 함께 앉으셨던 다른 여성 관광객 한 분이 대신 사과를 했습니다. "죄송해요. 대신 저희가 사과할께요." 라구요. 그랬더니 그 분께서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괜찮습네다. 머~ 그 분 인격의 문제지요."라며 웃어 넘기시더라구요. 내심 다행이다 생각이 들면서도 참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요즘은 남측에서도 음식점 종업원들에게 그렇게 반말로 주문을 하지는 않는데... 비록 몇 분의 관광객들의 모습이었지만 행여 그 모습 속에 경제적 격차, 사회적 격차 등의 이유 등으로 알게 모르게 북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과 함께 걱정도 되었습니다. 우리의 통일은 마음의 통일로부터 먼저 오는 것일 텐데...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며 북측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남한에서 많은 차별, 무시를 받는다던 어느 새터민 친구의 말이 떠올랐던 것은 그저 저의 오바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도 있습네다~ =^^=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를 했네요. 이번에는 조금 더 재미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북측이나 남측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궁금한 거는 역시 연애와 결혼 이야기였습니다. 북측은 결혼이나 연애를 어떻게 할까? 내심 궁금했었는데 북측 종업원분들도 저희들의 나이나 남자친구, 결혼 여부등에 대해 아주 궁금해하시더라구요.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이 없나 옆에서 챙겨주시면서 틈틈이 ‘나이는 어케 되십니까? 아~~ 그럼 남자는 있으시겠지요? 아??? 어쩝네까...’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여 놀랬다는 칭찬(^..^v)과 함께 아직 미혼이라는 말에 걱정까지 함께 해주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더불어 여쭤봤죠.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없습네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스무살입네다. 아~ 정말 어리시네요. ^^’

더불어 진짜 궁금했던 이야기도 물어봤습니다. ‘여기서는 결혼을 어떻게 하나요? 보통 중매로 하나요? 아님 연애도 하나요?’ 이 질문에는 북한과 같이 통제가 심한 나라에서는 왠지 연애란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저의 편견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북한과 연애! 왠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북한 접대원 동무의 단순명쾌한 답변~ ‘둘다 합네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데 나라에서 일일이 그런 것까지 관여할 수는 없잖습네까? 연애도 하고 다 합네다.’ 그러시더라구요. 슬며시 무안하긴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더 물어봤지요. ‘그럼 여기서는 보통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누가 먼저 하나요? 여자가 먼저 하는 경우도 있나요?’라구요. 그랬더니 살짜기 놀라신 것 같더라구요. 눈이 동그래지시면서 ‘아~ 음... 여자가 먼저 말하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거의 남자가 먼저 말합네다.’라구요. 하긴 남한도 그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 ㅋㅋ 여튼 상쾌해진 기분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막 나누었는데 그 접대원 동무의 마지막 말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언니! 꼭 생기시라요~’ 흐흐~~ 하지만 금강산에서 가슴에 불지름 당하기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강산을 오르내리며 안내원 동무들이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아~ 청춘남녀의 피해갈 수 없는 주제!연애여라! 아까 전에 만났던 분과 똑같은 ‘몇 살이십네까? 네? 결혼하셨겠지요? 아??? 어쩝네까?’와 똑같은 유형의 질문들이 사정없이 날라오더군요. ^^;; 아 이 내 설 곳은 그 어디멘가... 통일이 되더라도... 왠지... 암울해보이던걸요. 그래도 이왕이면 평화로운 통일 한국에서의 싱글이 분단 한국에서의 싱글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여튼 ‘남자친구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네~ 있습네다~’라며 얼굴 한가득 지어보이던 그 자랑스러운 미소~ 체제가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사랑이라는 것은 그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금강산에 가서 본의 아니게 가슴에 잔뜩 불만 안고 왔네요... 봄 바람이 부는데... 아으~ 어떡하지요... ^..^ㅋ

결혼적령기가 늦어지는 남북한 젊은이들... 아~~

새로운 곳을 여행하다보면 그 곳의 경치도 물론 기억이 오래 남지만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들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사회가 우리랑 많이 다를 경우에는 더욱이요. 그래서 어느 여행보다 사람들과의 만남, 대화 등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곳이 금강산 여행이 아니었나 합니다. 금강산 호텔 문지기 아저씨들과의 만남 또한 그러했어요. 호텔 문지기 분들이라 그랬던 걸까요, 다른 북한 분들에 비해서 얼굴도 훨씬 좋으시고, 키도 크시더군요. 그 분들이랑 호텔 문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을 많이 물어봤어요. ‘남한에서는 보통 언제쯤 결혼합니까? 결혼 하셨습니까?’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질문~ ^^;; 남한이나 북한이나 나이와 결혼 여부가 공통의 궁금 사항인 걸 보면 역시 우리는 한민족은 한민족인가 봅니다. ^.= 그러면서 남한에서는 IMF 이후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또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결혼 연령이 조금씩 많이 늦어집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하시더군요.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이유는 조금 틀리지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무슨 말인가 들어봤더니 ‘여기는 국가를 위해서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지’하는 마음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점 결혼 연령이 늦어진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으며 ‘네~~ 그렇군요~~’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90년대 후반 북한에 닥쳤던 기근이나, 요즘의 경제나, 에너지난 등... 북한 사회의 고단함이 커진 만큼 북한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기가 늦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200백만 실업시대(3D 업종은 기피한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고개 숙인 남한의 젊은이들과, 식량난, 경제난 등으로 대동단결의 구호 아래 모인 북한의 젊은이들.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지금 내가 선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믿으며 슬며시 풀어진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온정각 기념품 코너에서 본 십자가

이제 남한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쇼핑 시간, 사무실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온정각 기념품 코너엘 드렸습니다. 이왕이면 북한 물건을 사가지고 가야지 하면서 기념품 코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옹~ 유달리 저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십자기 문양의 열쇠고리, 목걸이, 핸드폰 줄 등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종교탄압이 심한 곳이라는데...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그런데 십자가 목걸이 장식품? 온정각 휴게실의 직원 대다수가 북한 사람들이 아닌 조선족들이고, 또 외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에서 만난 십자가 기념품은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본의 힘을 새삼 느끼기도 하였구요. 문득 처음에는 규제를 했는데 지금은 금강산 호텔에도 성경책을 다 들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며 읽으시던 성경책을 챙기시던 어느 간사님 생각이 나더군요.

흠... 종교의 자유, 정치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하지만 가랑비에 흠뻑 젓는다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 공단 같이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북한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 정치의 자유에 젓을 공간도 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을 받고 있고, 노동 환경 역시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그래서 개성공단에 대한 제제를 나름 표시한 미국 북한인권특사 제이 레프코위츠의 주장은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2달러이지만, 곧 4달러, 8달러, 16달러 등... 북한이 잘 살수록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 또한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남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교류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만남 속에 자유를 느낄 공간 또한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북한인권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더불어 남북경협이 그 어느 때보다 물꼬를 트고 있는 이즈음 북한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의 인내와 마음 넓히기기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평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권개선을 인권적인 방법으로. =^^=

통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북한 땅을 밟는 설레던 마음부터 여행 중에 보았던 북한 마을, 사람들, 산지들의 풍경들, 그리고 북한 아가씨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까지... 요즘도 한번씩 문득문득 그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 관련 뉴스는 그리 유쾌하지가 않네요. 북한 인권, 6자회담 지지부진, 미국과 북한 간의 끊임없는 신경전, 개성공단 이야기, 요즘 또 한창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납북자 이야기 등. 그런 소식들을 전해들을 때마다 그 때 만났던 친구들, 그리고 먼발치에서 보았던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가까이에선 그처럼 가깝고 똑같은 한민족 인 것 같았는데, 먼데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왜 그렇게 먼 나라, 먼 이웃 같은지... 가까이에서 보면 그 사람의 가슴에 김정일 뱃지가 달렸는지 보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이 얼마나 따뜻해 보이는지, 그 사람의 얼굴이 얼마나 윤택해 보이는지가 나에겐 더 중요하던데... 멀리서 들려오는 북한 사람들의 소식은 왜 그리 정치적이고 큰 이야기들 밖엔 없는지...

다행히 지난주부터 해서 열렸던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정말 어려워 보이던 납북자 문제나 한강 하구 골재채쥐 문제, 민족 공동 자원개발 문제 및 열차 시험운행 및 철도·도로 개통 문제, 개성공단 건설사업, 경공업 및 지하자원 협력 문제 등에 대해 남북이 협의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은 정말이지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남북이 하나 되려고 노력했던 것의 결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소식, 기쁜 소식들이 넘쳐나 궁극적으로는 남북장관급 회담이란 단어 자체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을 마무리 하며 문득 온정각 휴게소 기둥에 붙어있던 ‘재미있는 북한말’ 코너에 실렸던 북한말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갈등을 북한말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아세요? 바로 ‘마음다툼’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보고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답니다. 아~ 그렇지 갈등이 곧 ‘마음다툼’이지라구요. 갈등! 무언가 추상적이고 고상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다 마음다툼이지 않습니까. ‘네~ 여야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남북한 간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를 다 다른 말로 하면 ‘여야 간에 마음다툼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남북한 간에 마음다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네~~ 이 마음다툼을 풀 길은 무엇일까요...’ 벽에 붙혀진 ‘갈등→마음다툼’이란 글귀를 보면서 갈등이란 단어를 마음다툼으로 바꾸면 우리 안에 갈등이 좀더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분단의 시작, 결국 우리 안의 마음다툼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현재까지의 대립 상황 역시 마음을 풀지 못함이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금강산을 다녀오며 통일! 참 어려워보이고 막막한 것 같지만 어쩌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댓말을 쓰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상대적 부함을, 상대적 자유함을 자랑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북한의 민둥산에 묘목 하나를 더 심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통일은 오지 않을까라는. 아~ 내년 식목일에는 북한에다 저 이름으로 사과나무를 하나 심어 놓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북한 친구들, 남한 친구들 다 섞여서 신나게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몇 년이 흘러 사과가 주렁주렁 열매 맺혔을 때 그 친구들과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 돗자리 깔고 사과도 깎아먹고, 노래도 부르고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 날이 분명 오기는 오는 거겠지요? ^.=

* 이로써 금강산 기행문을 모두 마칩니다. 유치하고, 단순한 저의 생각을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저의 작은 느낌, 경험들이 단 한분에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요. 여러분들도 언젠가 기회가 되시면 꼭 한번 북한을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왜 통일이 되어야 할까...’란 질문이 ‘왜 우린 나눠져 있지?’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경험. 이것이 이번 금강산 여행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합니다. 금강산 호텔 앞에 세워져 있던 한반도기. 이 한반도기가 한반도 여기저기에 펄럭일 날을 기대하며, 남북한에 평화와 통일의 다리가 이어지는 그날이 오기까지 평화네트워크는 오늘도 열심히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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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나도 14년전 금강산관광을 갔던게 엊그제인뎅~!!! 그때로 다시 돌아갈래~!!!!!!! ㅠㅠㅠㅠㅠㅠ 2001년 1월달의 일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대한미국 남녘미녀들보다 차라리 북녘의 통통하고 건강한미녀가 훨씬 더 좋더라~!!!!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면 어여쁜소년 문진혁을 만날날이 왔음 좋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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