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청학연대, 1년을 돌아본다 > 기타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5월 28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기타

6.15청학연대, 1년을 돌아본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03-12-06 00:00 조회1,170회 댓글0건

본문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남북 관계는 지난 50여 년의 어떠한 노력에 비할 수 없이 급진전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50여 년의 세월동안 남북이 여러차례 만남을 준비하고 자그마한 성과들을 가져오긴 했지만 6.15 공동선언이 가져다 준 만큼의 획기적인 전환은 없었다는 것이다. 6.15의 힘이어서일까.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쪽 통일운동 진영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이 있었다. 6.15공동선언 실천 청년학생연대 결성과 활동이 가져다준 남쪽 통일운동의 신명나는 전환을 그림공장과 수원청학연대의 이야기로 들어본다.

청학연대 친선운동회

전환1- 수준, 이해의 차이를 넘어서 단결의 물결로

b_7-1.jpg "청년학생단체, 종교단체가 서로의 벽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내용을 합의하고 공동으로 투쟁을 전개하기까지 이해의 정도가 달라서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죠. 그런데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는 사상의 수준이나 이해의 정도가 달라도 내용이 쉽게 합의되고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생기질 않더군요. 사업에도 탄력이 붙고요." 수원 청학연대 김정백 집행일꾼의 말이다. 수원청학연대는 9개 단체가 모여 활동한다. 종교단체를 비롯해 학생, 청년단체가 모여 활동하는데 수원지역의 통일마당을 진행하거나 거리 선전전을 준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청년회와 학생들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청학연대로 묶이면서 같이 구한마당을 준비하게 되고 잦은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청학연대에 대한 관점도 바로세우고 지역에서 연대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몸소 느끼는 연대의 성과가 적지 않다고 강조하는 김정백씨. "분명 6.15 공동선언 발표 전에도 각 단체가 하던 역할들은 있었어요. 그런데 자기 조직의 역할에 충실하다보니 단결의 기치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공동선언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기치가 된 듯합니다. 서로들 견해 차이가 있긴 했지만 모두 합의된 기치를 이행해 가는 것을 첫머리에 두고 활동하게 됐죠."

6.15청학연대는 16개 조직(24개 단체) 참가, 5개 조직 참관(11월29일 현재)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관 단체가 늘어 현재에 이르렀는데 청학연대는 종교단체, 문예단체, 청년학생 단체 등 다양한 조직이 참가하는 연대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 사상, 이해의 차이를 넘어 이들 조직이 단결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청년 학생은 가장 진취적이고 새것에 민감한 계층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학생의 특성에 맞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청학연대였는데 종교나 사상의 수준차이는 청년학생이 단결하면서 극복됐다고 봅니다. 보다 근본적인 힘은 물론 6.15 공동선언의 힘이겠지만요." 다른 조직과 연대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던 것도 극복하게 한 것이 공동선언 때문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6천여 명의 청년, 학생이 참가한 8.15청년학생대행진

전환2-대중을 향한 통큰 사업

b_youthprade3.jpg청학연대의 사업은 거침없기로 유명하다. 8.15 대행진을 성사하면서 증명되기도 했는데 대중을 만나감에 있어 통큰 사업, 세련된 사업을 진행했다는 칭찬이 이어지기도 했다. 8.15 대행진 기획주체를 맡았던 그림공장의 장진익 사무국장은 "사실 처음에는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청학연대의 위상을 생각하고 그에 걸맞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인식은 부족했었던 것이죠. 대행진을 준비하러 왔던 선전일꾼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청학연대 활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고 대행진 사업이 얼마나 중요하게 제기되는 사업인지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했으니까요." 교양도 제대로 안됐던 청학연대가 8.15 대행진에서 보여준 통큰 사업의 성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행진 사업을 준비하면서 대중들이 항상 봐오던 식의 선전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중들도 의식수준이 높아졌고 우리의 내용을 조직화된 1만이 퍼레이드 형식으로 대중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구성해 나갔죠. 물론 일은 많았습니다. 기간도 짧아서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고 청학연대에 대한 교양부터 진행해야 했으니까요. 대행진을 마친 후 뒷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한 새내기가 말한 것이 생각나네요. 청년학생들이 한 울타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고요. 선후배가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더욱 신심을 높여가는 계기였다고 봅니다. 8.15 대행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참가한 각 단체들과 학생들이 스스로 조형물을 만들고 각 단체들의 고민을 구체적인 형상물로 표현하면서 이뤄진 것 같습니다. 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각 단체의 의지가 보여준 성과입니다." 장진익 사무국장의 평가다.


반미반전평화수호 이라크 파병반대 청년학생비상회의 결성 기자회견

전환3-실천공간 마련

b_PA010023.JPG 청학연대는 6.15 공동선언 이행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성된 이후 반미반전 평화수호의 깃발을 들고 시기별로 제기되는 투쟁을 활발히 펼쳐나가기도 했다. 가장 활발히 대중들을 만나가는 청학연대의 이러한 활동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 각 단체의 입장과 이해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동선언에 합의한다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표면화되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위로 떠올라 적극화되는 현상을 가져왔습니다." 청학연대의 많은 대중 활동은 6.15가 열어준 길을 더욱 잘 걸어가기 위한 활동이라는 말이다.

결성 이후 지속적으로 활동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진익 사무국장은 "개별 단체로 활동할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이 잘 안되다가 큰 연대체가 생기면서 활동방식과 결합방법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아요. 또 청학연대에서는 각 단체가 특성에 맞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주고 사업을 도와주니까 각 단체들이 실천공간에서 뜻에 맞게 활동할 수 있게 됐나고나 할까요"라고 이야기한다.

"청년들의 경우는 학생들과 달리 대중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대중사업에 대한 고민이 적을수도 있는데 지난 메트로 선전전 같은 경우에는 직장인들도 같이 참가해서 대중에게 선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청년단체들로서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청년학생 단체들의 실천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단체마다 작게는 1인 시위부터 각종 성명서 발표까지 시기를 놓치지 않고 투쟁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물론 활동의 적극성에서 차이가 날수는 있겠지만 일상적으로 결합하고 있으며 조직을 확대 강화해왔다는 것은 청학연대 1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죠." 새삼 연대활동의 힘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청년학생들이 새로운 것에 민감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특성이 청학연대의 울타리 안에서 맘껏 펼쳐져 6.15 공동선언 이행의 선두에 서게 된 것 같다는 장진익씨의 말처럼 청학연대의 힘은 대단했다. 작은 실천들에서 나타나는 성과에서부터 각 단체들의 조직강화에 이르기까지 청학연대가 손길을 준 곳곳에는 지금도 6.15 공동선언의 힘이 꽃피고 있다.정유진기자

[출처:인터넷 자주민보 2003.11.29]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