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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주의:'인종주의에 빠진 무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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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07-06 16:50 조회4,64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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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미국> 3. 인종주의에 빠진 황야의 무법자

19세기, 그러니까 미국의 팽창기의 모습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이후 영국과 패권을 다투는 상황과 1, 2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는 영국과 프랑스의 시대였습니다. 미국은 유럽대륙으로부터 5000km 이상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 기대어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고립주의 외교를 이어가면서 북미대륙을 정복하며, 나아가 미주대륙 전체에 대한 패권을 키워갔습니다. 

1) 영국 눈치보는 먼로선언

미국이 강자에게 약했던 모습은 1823년 먼로선언으로 드러납니다. 먼로선언은 미국 대통령의 선언이며, 그래서 먼로 독트린이라고도 불립니다. 신문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부시독트린, 오바마독트린과 유사한 형식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로선언은 첫째, 비식민의 원칙을 제기하였습니다. 향후 미 대륙의 어떤 부분도 유럽의 식민지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불개입원칙을 밝혔습니다. 미 대륙에서 독립을 선언한 정부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유럽이 개입한다면 미국에 대한 비우호적인 태도로 간주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가 고립원칙입니다. 유럽이 미 대륙에 개입하지 않는 한, 미국도 유럽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먼로선언을 두고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항해 북미대륙의 자주권을 지킨 선언으로 치부합니다. 유럽은 유럽인들이, 북미는 북미인들이 이끌어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미대륙의 주인이 유럽에서 이주한 앵그로색슨족들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인디언과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사람으로 취급하지않던, 백인우월 인종주의자들의 자아도취에 빠진 해석입니다.

먼로선언은 과연 유럽에게 북미대륙의 권리를 주장한 선언일까요? 먼로선언을 이해하려면 선언이 발표된 1823년의 국제정세, 주되게 유럽정세를 보아야 합니다. 1823년은 유럽대륙이 나폴레옹과의 기나긴 전란에서 1815년 워털루 전쟁으로 영국이 마침내 나폴레옹을 꺾은 시점이었습니다. 영국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것은 사실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러시아 겨울바람에 참담하게 패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타도의 일등공신은 러시아였는데, 그 승리의 영광은 영국이 가져간 꼴이었습니다. 섬나라였던 영국본토는 유럽대륙에서 유일하게, 전란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혹독한 피해를 입은 러시아가 영국과 경쟁할 수는 없었겠지요.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과 매우 흡사한 대목입니다.

영국이 유럽대륙을 석권하였던 나폴레옹을 꺾은 이상, 영국의 경쟁세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가 다시 회복하고, 독일과 이탈리아가 독립을 이루어 유럽대륙에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진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먼로선언이 발표된 1823년은 나폴레옹을 꺾은 영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점입니다. 영국은 이 시기에 동인도회사의 인도침략을 가속화하였고 중국대륙 침략을 위해 1819년, 싱가포르를 개발했습니다. 영국이 남아프리카에 케이프 식민지(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건설한 것이 1806년이었습니다. 영국이 호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지배권리를 선언한 것도 1826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영국이 세계최강 군대를 전 세계로 보내 유라시아 대륙의 식민지를 도처에 늘려가고 있던 시기에 발표된 것이 1823년의 먼로선언인 것입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 개척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 즉 구대륙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시장의 중심인 인도와 중국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구도 없고, (그 때까지는) 알려진 자원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에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먼로선언은 그 무슨 유럽의 패권에 맞선 북미대륙의 자주적 권리가 아니라 “미국은 영국 분들이 정복하실 구대륙에 들어가지 않을테니, 여러분들도 구태여 볼품없는 아메리카로 오지 마십시오.”정도의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강자에게 약한 미국의 전형입니다. 강자에게 약한 미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전통입니다. 미국이 세계경제패권을 영국에게 물려받는 과정이 그러하였고, 1, 2차 세계대전에서도 미국은 독일의 전쟁수행능력을 두려워하며 참전을 주저하였습니다.

2) 명백한 숙명으로 포장된 팽창 

19세기, 유럽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식민지화에 골몰할 때, 구대륙에서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아메리카 대륙의 본격적 점령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약자에게 강한 제국주의 국가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영국의 눈치를 보며 선언한 먼로선언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패권선언으로 변질되어 차후 미국외교정책의 근거가 됩니다. 1840년대의 서부개척을 위한 구호였던 명백한 숙명(Manifest Destiny)과 20세기 초의 중남미 개입은 모두 근거를 먼로선언에서 찾고 있습니다. 1823년 이후로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 것이었으니 미국이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권용립 교수의 “미국외교사”에 따르면, 1845년 7월과 8월에 민주당 기관지인 데모크라틱 리뷰에 오설리번은 “매년 수백만씩 불어나는 우리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신이 그 섭리로써 하사한 이 대륙에서 뻗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명백한 숙명(Manifest Destiny)”이라며 미국의 영토확장은 신의 뜻에 의해 예정된 숙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권용립 교수는 미국의 팽창을 신의 섭리로 보는 관점은 식민지 시대부터 미국을 지배했던 캘빈주의의 선민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식민지 시대 메사추세츠의 종교지도자 존 윈스럽이 미국을 “언덕위의 도시”(City on the hill)에 비유한 연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서부의 시대가 막을 올렸습니다. 명백한 숙명이 미국인들의 서부개척의 당위를 열었다면 이후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개발된 금광은 서부개척의 경제적 요인이었습니다. 1848년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강 근처에 있는 존 서터(Johann Sutter)의 제재소에서 금광이 발견된 이후, 1853년까지 25만명의 미국인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를 골드러시(Gold Rush)라고 합니다.

1869년에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동부 뉴욕에 이르는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됩니다. 이제 황량한 사막에서 외로운 총잡이가 등장하는 미국 서부영화의 배경이 완성되었습니다. 

3) 프런티어 정신 vs 비적

황량한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을 맞으며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터벅터벅 들어옵니다. 그는 건초덤불만 굴러다니는, 스산하기 그지없는 마을의 선술집을 찾습니다. 그런 선술집에서는 예외없이 가슴을 반쯤 드러낸 여성이 술을 따릅니다. 사나이는 술을 청하는데, 폭력을 휘두르는 갱단과 시비가 붙어 총잡이의 결투를 벌입니다. 

상투적인 미국서부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말을 탄 총잡이와 갱단, 그리고 술집여자입니다. 갱단은 언제나 사막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습격해 노략질하고, 총잡이는 예외없이 술집에서 결투를 벌이며 갱단을 징벌합니다. 눈 깜짝할 순간의 총격전에 갱단은 쓰러지고, 갱단과 웃고 떠들던 여자들은 몸을 피하기 바쁩니다. 미국서부영화를 보면 19세기의 미국 서부에는 갱단과 술집여자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의 중국대륙을 그린 영화도 알고 있습니다. 19세기 중국과 미국 서부는 혼란이란 점에서 그야말로 판박이입니다. 중국의 혼란상은 비적으로 대표됩니다. 말을 탄 비적 떼는 마을을 노략질하고,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여성을 겁탈합니다. 미국 서부영화는 갱단을 총으로 징벌하였다면, 중국영화에서는 비적을 쿵푸와 무술로 제압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19세기 중국대륙이 영국이 유포한 아편에 무너졌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마을마다 들어선 술집에서 위스키에 무너졌습니다. 미국 동부도 뉴욕과 시카고 등 대도시는 갱단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헐리우드가 “갱스터 무비”라는 장르를 만들어 이를 문화상품화 했겠습니까? 세상에 미국영화에서는 양복 안주머니에 자그마한 술병을 넣고 다니며 틈만 나면 홀짝거리는 미국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우리상식으로는 완전한 “알콜중독자”이지만, 미국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치부됩니다.

혼란으로 가득 찬 아메리카 대륙이 언제부터 개척정신으로 빛났는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방에서 비적이 출몰하던 중국대륙과 차이를 볼 수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19세기 중국대륙은 모든 금은보화를 서구열강이 약탈해갔다면, 19세기 북미대륙은 미국자본가들이 약탈해갔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4) 인종주의에 가려진 서부개척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미국이 “서부로, 서부로”를 외쳤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서부로 나아가며 대륙횡단철도를 만들고,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던 시기는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기 이전이었습니다.

미국은 왜 쿠바,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중남미로 진출하지 않고, 서쪽으로만 나아갔던 것인가요?

이는 미국의 인종주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권용립 교수는 “미국외교사”에서 미국사회에서 부정적 남미관이 <노스 아메리칸 리뷰>등을 통해 유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남미와 북미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는 시각이 유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아메리카 대륙체제라는 것이 있다면 미국의 부정적 남미관을 대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시장일 뿐, 미국의 일부는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유럽대륙과 달리,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납치해 이들을 노예로 부리던 미국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인종주의가 만연하였습니다. 미국의 인종주의는 백인 이외의 사람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색인종의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기본적 인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미지역은 백인과 원주민간의 혼혈인 메스티소와, 백인과 흑인간 혼혈인 물라토를 비롯한 자유로운 교제와 결혼이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같은 남미지역의 백인과 원주민의 잡혼을 경멸하였다고 합니다. 종교적 측면에서도 개신교가 중심인 미국은 가톨릭 중심의 남미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이 1823년에 먼로선언을 발표하였지만, 아메리카 대륙 가운데서도 중남미는 미국연방으로 편입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미국은 1824년에는 콜롬비아가, 1825년에는 브라질이 동맹을 제의해왔지만 이를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중남미와 정치적 동맹을 맺을 생각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팽창을 외쳤지만, 그 팽창은 유색인종이 다수를 이루던 중남미를 외면하였고, 중남미는 미국의 상품시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미국의 팽창은 영국이 관할하던 캐나다를 배제한 팽창이었습니다. 북쪽과 남쪽을 배제한 팽창이니 서부로밖에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황량한 사막을 달리던 서부팽창은 강대한 영국과 유색인종이 주류를 이루던 남쪽을 피한 미국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미국은 북미대륙의 인디언을 짓밟고 그들의 연방을 완성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모든 면에서 열려있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이 문제시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심취해, 오직 그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 자칭하면서 유색인종을 경멸하면서 흑인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역사는 19세기 미국처럼 인종주의에 심취해 끝없는 팽창야욕을 보였던 제국을 또 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통치하였던 나치 독일입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며 유럽대륙에 아리안국가 건설을 꿈꾸었다면 미국은 인디언을 학살하며 북미대륙에 앵글로색슨국가 건설을 꿈꾸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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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오죽했으면 백인이자 미군이었던 제임스 드레스녹이 북녘으로 의거했는지 짐작이 간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BBC에서 푸른눈의 평양시민에 나왔을때 인터뷰를 하는것을 보면 참으로 측은하면서 한편으로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미국에 가봐야 상업주의적이고 타락한사람들이 넘쳐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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